도감은 몰락해가는 양식이다. 그러나 질 것을 알면서도 맞서야 할 때가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정면으로 대하는 것이 좋다. 혹시 모른다 아니냐? 사실 뭔 몰락을 한다는 것도 철 지난 이야기다. 무슨 철이 지난다는 자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잡탕죽이 되어놓아 메이저니 마이너니 별 의미가 없다. 요즘은 팔로어 10만만 넘어도 인플입네 하면서 어디 나와주고 불러주고 서로 춤추고 웃고 밀어주고 끌어주고 다 한다. 못 할 일이 없다. 문예의 본질 한 면은 인연의 극화임이 자연스럽게 부상하고 있는데……. 천 명만, 딱 천 명한테 팔기조차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인플 도감은 매년 낸다. ○○년도 신춘문예 당선집 같은 거다. 왜 이런 책이 아직 없는지 모르겠으니 일단 법적으로 만들어도 괜찮은지 알아봐야 할 것이다. 어쩌면 있는데 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무슨 ○○년도 트렌드 어쩌고 하는 고루한 책들과는 근본적으로 접근이 달라야 한다. 염병할 트렌드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개성만이, 자신들을 제단에 바치고 전자 잿가루가 되어가는 개성들만이 중요하다. 이 책은 터널이다. 바깥은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그 자신들로만 이어지는, 출구 없는 터널들이다. 무너진 개미굴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프로필 사진이나 이미지를 넣지 않을 수도 있다. 초상권 그런 건 차치하고서라도. 그들의 와꾸나 플픽, 아바타 따위가 뭐 중요한가? 그냥 내용 전부를 글자로만 쓰면 어떨까? 도전적인 과업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도감이 아니라 사전이 된다. 이 책의 형식으로 사전이 맞는지 도감이 맞는지 토론해보는 것도 좋겠다. 어쩌면 도감은 한국에 어울리지 않는 양식 같기도 하다. 일본이라면 모를까. 한국 국적자만 다룰지 한국어 사용자 전체를 다룰지도 정해야 할 것이다. 도감에 실릴 수 있는 팔로어 수를 플랫폼별로 정해야 할 것이다. 플랫폼별로 고려할 수도 있다. 다이아몬드편 플래티넘편 골드편 등 티어별로 권책을 나누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충분히 유명한 사람은 전혀 다룰 필요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짧게만. 만약 입문서라면, 10만 이상부터 100만 이하 정도의, 자기들끼리만 유명하다고 하는 사람을 소개하는 편이 좋겠다. 이미 유명한 사람이 계정을 만든 경우의 취급을 두고 논쟁해야 할 것이다. 단발성 기획이 아니므로 제1권의 무게감이 어쨌든 중요하다. 세계편도 만들 수야 있겠지만 나중의 일이다. 어쩌면? 어쩌면? 또 뭘 두고 이야기할까? 이 책은 한 권의 자본주의 만신전이어야 한다. 이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교리 논쟁이다. 동시대의 신학서다. 만들어야 할 책은 그런 책이다.
이딴 개쓰레기 같은 책 만드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비슷한 결로 밈 도감도 생각해봤다. 그런 책이 없다는 게 억울하다? 아무리 하찮은 전자 쓰레기들이더라도, 그래도 그토록 많은 이들이 주워섬긴 것들이, 이렇듯 무참히 모두의 기억 속으로 하염없이 하염없이 녹아 없어진다는 것이?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이 오늘날 있던가? ‘이탈리안 브레인롯 캐릭터도감’이란 책은 이미 있다. 퉁퉁사후르 등의 장난감도 만들어 팔던데. AI 얘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권리를 상업적 권리로, 인간을 상품으로 점점 더 강하게 대체해온 데 대한 자연의 반작용이고 천벌일지도 모른다. 해적들이 사막에 도달한 것이다. 그로부터 배워 좀 더 어두운 맛을 가미하면 어떨까? 트랄랄레로트랄랄라는 희미해질 뿐 죽지 않는다. 하지만 『인플 도감』은 다르다. 죽은 사람만 다루어보는 것이다. 그 사인은, 그 사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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