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만들어지지 않은 드라마의 대본집이다. 드라마의 제목은 그냥 대충 붙여봤다. 드라마 제목이란 게 다 이렇게 어디서 멋대로 슥 떼 와서 붙이는 것 같길래.
만들어지지 않은 드라마의 대본집을 왜 출간하나? 잘 모르겠다. 희곡집 같은 느낌으로 하면 될까? 누가 드라마를 쓴다는 건가? 모르겠다. 나는 아니다. ‘기획만 해도 된다면’이다. 이렇게 운을 띄워두면 훗날 이런 걸 쓸 작자가 있을까? 아직은 이 드라마를 내놓기 어렵겠지만, 지금부터 쓰기 시작하는 정도라면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빨리 써야 할지도 모른다. 바로 지금 써야만 팔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식으로든 쓰이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두 번의 탄핵을 향해 돌진하는 드라마다. 더블 주인공이다. 한 명은 P근혜고 다른 한 명은 K건희다. 드라마의 첫 장면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귀국하는 P근혜. 똘똘하게 생긴 두 살의 K건희가 놀고 있는 가운데 그의 어머니가 뉴스를 보고 있다. P정희는 2화에서 암살당한다.
초반부는 P근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C순실과의 만남도 운명처럼 그려진다. K건희의 아역은 사이사이 매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중반부에서는 50년대생과 70년대생 두 지배계급 여성의 쬐금씩만 각색된 생을 따라가며 산업과 종교와 무속과 정치와 한국 지배층의 만상 민낯이 난마처럼 얽힌다. 그리고 2012년, K건희가 드디어 Y석열과 결혼하며 드라마는 후반부로 진입한다. 그해 대통령에 당선되는 P근혜.
최종화에서는 두 탄핵이 동시에 이뤄진다. 환호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넣어야 할까? 잘 모르겠다. (엑스트라가 너무 많이 필요할까?) 마지막 까만 배경에 떠오르는 자막은 대충 이런 뉘앙스. ‘그럼에도 모두가 딱히 배운 것도 나아진 것도 없었다. 모두가. 최악은 막았지만 더 나빠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이렇게 쓰고 나니 힘이 쭉 빠진다. 이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개털만큼이라도 좋으니 힘이 나는 문장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건 작가님께 맡긴다.
유리관
일해야 한다, 일하고 싶다, 일하기 싫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출판노동자. 생계 외 마음의 보전을 위한 취미로 읽기와 쓰기를 하며, 문예계 팀 블로그 곡물창고(gokmool.blogspot.com)에서 사이버 창고관리인으로도 일하고 있다. 일기집 『교정의 요정』(민음사, 2024), 미친 책 『사명을 찾아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