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배드베드북스의 대표 김승일 시인입니다. 배드베드북스는 《두꺼운 그림》이라는 시그림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두꺼운 그림》은 김승일 시인이 쓴 동명의 시와 판화가 히로카와 타케시의 판화가 합체하여 만들어질 것입니다. 만들어질 것이었습니다. 타케시는 신기한 사람입니다. 멋있고 귀엽게 생겼는데 자신감이 별로 없습니다. 항상, 내가? 내가 해도 될까요?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곤 합니다.
소심하고 내향적이라 말수가 없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멋있고 재밌고 귀여운 것에 대해서라면 한참을 떠들 수 있는 사람입니다. 타케시가 자기 판화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항상 고개가 깊이 끄덕여집니다. 타케시의 판단과 선택에는 항상 이유가 있고, 더 좋은 것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있습니다. 애착이 있고 품위가 있습니다. 아주 작은 선택에도 깊은 고민이 존재합니다. 타케시의 판화는 숨은그림찾기 같습니다. 실제로 동물이 숨어 있고, 색깔이 숨어 있고, 언제나 세심한 디테일이 존재합니다.
타케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일단 찍어봐야 안다. 판화는 어떻게 찍힐지 완벽하게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좋다. 그러니까 타케시는 깊이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예상 밖의 결과물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 타케시는 아마도 모든 판화가가 그럴 거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랑 친한 판화가가 타케시밖에 없으니까요. 제가 아는 판화가 중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은 타케시입니다.
그런데 타케시는 게으릅니다. 사실 함께 사용하는 작업실 청소도 제일 열심히 하고, 남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면 가장 먼저 손길을 빌려주고, 씻기도 잘 씻고, 매일 조금씩 뭔가를 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핀치에 몰렸다고나 할까요?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이면 종종 회피합니다. 시그림책 《두꺼운 그림》을 계약한 지 3~4년이 되어가는데, 타케시는 작업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콘티는 이미 모두 짜놓았는데, 막상 작업을 전부 판화로 한다고 생각하니 감당이 안 되어 겁에 질린 것 같았습니다. 끝이 안 보이니까 시작도 할 수 없었고, 생활비도 벌어야 하고, 신변의 문제로 한동안 우울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책을 내야 하니까…… 작가를 교체해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타케시의 판화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 터라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여름부터 뭔가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타케시가 작업하는 것을 영상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려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촬영을 할 때만이라도 타케시가 판화를 할 수 있겠지! 그렇게 여름 동안 촬영을 했습니다. 인터뷰도 하고, 타케시가 그림 하나를 찍을 때마다 감탄하기도 하면서 여름이 다 갔습니다. 뭔가 진전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갑자기 흥분해서 고조되었고, 타케시가 작업 일지도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타케시는 글도 재밌게 잘 쓰거든요. 그리고 마침 배드베드북스에서 작업 일지 시리즈도 준비하고 있으니까. 잘만 되면 일타쌍피, 일타삼피, 일타오피 같았습니다.
타케시는 써보겠다고 했지만, 이것저것 할 일이 늘어나서 약간 못마땅한 것 같았습니다. 악덕 출판사 대표인 저는…… 이게 다 타케시가 지금껏 작업을 안 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막 밀어붙였습니다. 여러분, 타케시가 《두꺼운 그림》을 완성할 수 있게 많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타케시의 작업 일지는 격주로 연재됩니다. 가끔 휴재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타케시의 일상 얘기, 고민, 작업 보고가 포함될 예정입니다. 그러면 지금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