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을 찾아서』는 출판노동자로 자신을 소개하는 유리관의 두 번째 책이다. 유리관은 출판노동자라는 점에서, 그리고 두 번째 책을 쓴 작가라는 점에서 정확히 나와 같다. 그리고 이 추천사는 내가 그를 위해 쓰는 두 번째 추천사다. (하지만 나는 그를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은 없다. 그러니 그가 쓴 글의 진실성이나 심지어 그의 실존 여부에 대해 뭐라 할 말이 없다. 물론 책을 추천하는 데 그리 중요한 사실은 아니다….)
나는 유리관이 “일하는 사람들의 책”을 쓰는 사람, 건조하게 말해 노동문학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단, 그가 쓰는 노동문학의 장르는 통상적 의미의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언제나 노동 환경의 초현실성을 증언하려 한다.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듯이 현실은 소설보다 개연성이 없다. (이 말에 의심이 간다면 일련의 내란 사태를 한번 떠올려보시기 바란다.) 개연성과 현실성은 현실 자체의 속성인 적이 없으며, 현실은 언제나 상상보다 놀랍고 기이하다.
유리관은 첫 번째 책 『교정의 요정』에서 블랙 코미디의 문체를 빌려 노동 현실의 초현실성을 드러냈다. 두 번째 책 『사명을 찾아서』는 그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간다. 아니, 더 격렬하게 공격한다. 무엇을? 어느새 공고해져버린, 출판에 대한 이른바 ‘현실주의적’ 사고들을. 도처에서 돈을 벌라고, 주식을 하라고, 당장 재테크에 뛰어들라고 명령하는 세상이다. 그런 와중에 “앞으로 차릴지 안 차릴지 모를 미래의 어느 출판사의 사명 후보와 그 뜻을 생각해내는 것”이 주제이자 형식인 책이라니!? 노동문학을 넘어선 일종의 출판문학이다.
16년째 출판 편집자로 살다 보면 출판사를 차리는 일은 너무나 현실적인 문제라는 것을 어쩔 수 없이 깨닫게 된다. 가까운 출판인 여럿은 이미 자신의 출판사를 차린 지 오래지만 이상하게도 성공한 사례는 없다. 물론 완전히 망한 케이스도 드물긴 하다. 다들 근근이 생업처럼 출판을 이어간다. 그러다 보면 ‘현실주의적’ 사고에 갇히고 만다. 출판으로 해방을 꿈꾸었으나 출판 자체가 족쇄가 된다. 현실은 그것의 초현실성을 잃어버린 채 닳고 닳은 개연성만이 남는다.
『사명을 찾아서』는 출판사 사명에 대한 2차 창작이다. 전작보다 두 배로 개연성이 없고 두 배로 현실성이 없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출판 현실의 다른 가능성들을 밝혀준다. 이런 기이하고 이상한, 그러나 어딘가 희망적이고 어디 하나 있었으면 좋을 것 같은 출판사들을 허구적으로 제시한다. 그중에서 그나마 익숙해 보이는 네이밍을 몇 개만 꼽자면, ‘검열사, 돼지와 개, 반지하출판사, 비몽사몽북스, 초오류의 책, 흡혈문화사’ 같은 것들이 있다. 이름부터 웃기고 그에 대한 해명은 더욱 웃프다.
유리관은 ‘현실주의적’ 사고들을 끊임없이 조롱하면서 다시 한번 현실 속에서 초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준다. 무엇보다 현실 앞에서 다시 웃는 법을 배우게 해준다. 개연성의 폭압에서 벗어나 가능성의 유머를 선물하는 책. 아무도 쓰라고 명령한 적 없는 책. 바로 그것이다.
박동수
철학책 편집자. 사월의책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과학기술학과 현대사상의 새로운 조류를 공부하고 소개해 왔다. 동료 편집자들과 함께 ‘편집자를 위한 철학 독서회’를 수년간 진행하고 있다. 쓴 책으로 『철학책 독서 모임』 『동료에게 말 걸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