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판사
어제 인터넷 서점에서 책 하나를 구입하려다가 깜빡 잊고 잠들었다. 오늘 다시 사려는데 절판이란다. 아이고, 내가 사려던 책이 마지막 재고였나 보네. 하는 수 없지. 중고로 나온 책이 있나 보려고 중고책 판매 페이지를 열었다. 중고책값은 하루만에 정가의 세 배로 뛰어 있었다. 야이 개새끼들아.
분을 삭히다 보니 이건 좋은 돈벌이 기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출판사를 하나 차리자. 이름하여 절판사. 일단 있어 보이는 책을 낸다. 그리고 곧바로 절판시킨다. 중고가가 치솟게 만든다. 그리고 어둠의 경로를 통해 하나씩 내보낸다….
하기야 이런 경우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일인출판사를 꾸리던 한 선배는 어떤 책이든 삼십 권 정도는 남겨뒀다. 그 책은 증정본으로도 판매용으로도 쓰이지 않았다.
“자료 보관용이야?” 내가 물으면 “나중에 절판시켰을 때 비싸지면 하나씩 팔려고”라고 대답했다.
종종 찾던 서점의 주인은 가끔씩 SNS에 이런 식으로 글을 남겼다. “인터넷 서점에서 절판된 책, 마침 우리 서점에 재고 딱 한 권 남아 있네요. 필요하신 분 얼른 구하러 오세요.” 실제로는 어떠냐면, 재고가 열 권 정도 있다. 주인 말로는 그런 게시글을 올리고 나면 네댓 권 정도 팔린단다. 그리고 주인은 몇 달 뒤에 다시 이렇게 글을 올린다. “다 팔았던 줄 알았던 절판 도서, 창고 정리 중에 한 권 발견됐네요? (그냥 내가 가질까…) 그래도 꼭 필요한 독자분이 있을지도 모르니 이번 주까지만 서가에 비치해둘게요.” 그렇게 남은 재고를 털어낸다고.
그렇다고는 해도 정가보다 비싸게 판다거나 하는 건 아니니, 그 서점 주인의 사기는 귀여운 마케팅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이 일화의 핵심은? 절판이라는 성질에는 확실히 돈 냄새가 진동한다는 거. 어떤 사람들은 출판사가, 저자가, 마케터가 제발 한 권만 사달라고 애원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도, 막상 책이 절판된다고 하면 그것을 꼭 구해야 하는 것처럼, 자신이 꼭 읽어봐야 할 것처럼 군다. 그래서 돈 냄새를 잘 맡고 성실한 사람은 책을 손에 넣고 영영 읽히지 않을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서가에 진열한다. 종이가 썩어갈 때까지. 그리고 게으른 사람은 치솟은 절판본의 가격을 보며 운다.
물론 모든 책이 절판된다고 해서 다 비싸지는 것은 아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최저 중고가는 십수 년째 100원이니까. 말하자면 비싼 절판본에는 공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 공식은 한마디로 해두자면 애매성이다. 그 책은 절대로 너무 뛰어나서도 안 되고, 너무 아름다워서도 안 되며, 너무 쉬워서도 안 되고, 너무 중요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모두가 입을 모아 좋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하게 좋고, 애매하게 필요하고, 애매하게 시대를 타지 않아야 하며, 애매하게 중요해서 잃어버리기 적합해야 한다. 곧 절판사의 방침 또한 이것이다. 너무 너무인 것은 내지 않을 것, 최선을 다해 애매할 것.
또한 웃기고도 슬픈 사실 한 가지는, 중쇄할 만큼 팔리지 않아서 절판된 책의 값이 치솟고 나면 이후 복간되더라도 절판될 당시의 판본은 여전히 비싼 채이며, 복간된 책은 팔리지 않다가 또다시 절판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그제서야 복간되었으나 다시 절판된 책은 절판 도서의 대열에 합류하여 게을렀거나 가난했거나 때를 놓친 안타까운 독자들을 노리는 중고상들의 효자 상품이 된다.
그렇다면 질문. 여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누구일까? 내는 책마다 절판의 운명을 피해갈 수 없는 비인기 작가? 그런 작가들만 사랑하는 데다 현실 감각도 떨어지는 출판사 사장? 복간된 줄도 모르고 비싼 절판본을 산 바보 독자? 책 하나 못 샀다고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는 나? |